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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말 · 2025-08-23 · 조회수 92
"나이키의 성공은 단순히 운동화 판매에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스포츠를 넘어 음악, 패션, 거리 문화까지 흡수하며 젊은 세대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브랜드로 확장했다."

1960년대 미국 오리건주, 대학 육상선수였던 필 나이트는 평범한 청년이었다. 그는 졸업 논문에서 “일본에서 만든 고품질 저가 러닝화가 미국 시장을 점령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제시했고, 직접 이를 실행에 옮기기로 결심한다. 나이트는 당시 스승이자 오리건대 육상팀 코치였던 빌 보워만과 함께 일본 오니츠카 타이거(아식스)의 신발을 수입해 판매하는 작은 회사, 블루 리본 스포츠를 설립했다. 그들이 처음 판 신발은 미국산도, 유명 브랜드도 아니었다. 그러나 시장은 빠르게 반응했고, 무엇보다 코치와 제자가 함께 달리기 선수의 발에 맞는 신발을 고민했다는 사실이 회사를 차별화시켰다.
혁신은 엉뚱한 곳에서 찾아왔다. 보워만은 어느 날 부엌 와플 기계에 고무를 붓고 밑창을 구워 실험했다. 그 결과 탄생한 ‘와플 솔’은 가볍고 접지력이 뛰어난 러닝화 밑창으로, 곧 선수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일상 도구에서 출발한 실험이 스포츠 혁신으로 이어진 셈이었다. 작은 창업이 단순 수입업에서 독자 브랜드로 도약하는 순간이었다.
1971년, 블루 리본 스포츠는 이름을 바꾼다. 그리스 신화 속 승리의 여신 이름을 따 ‘나이키(Nike)’라 부른 것이다. 동시에 새 로고가 필요했는데, 한 대학생 그래픽 디자이너가 단돈 35달러에 제작한 스우시(swoosh)가 선택되었다. 지금은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로고 중 하나가 된 이 상징이 사실은 아르바이트 수준의 작업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은 오늘날까지도 전설처럼 회자된다.
나이키는 곧 선수들과 함께 성장하는 길을 택한다. 1970년대 러너 붐을 타고 브랜드는 빠르게 알려졌고, 결정적인 전환점은 1984년 마이클 조던과의 계약이었다. ‘에어 조던’은 단순한 운동화를 넘어 문화적 아이콘이 되었고, 나이키는 스포츠 스타와 브랜드를 결합하는 새로운 마케팅 패러다임을 열었다. 이는 “스타=브랜드”라는 공식의 출발점이었으며, 지금도 스포츠 산업의 기본 전략으로 자리 잡고 있다.
나이키의 성공은 단순히 운동화 판매에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스포츠를 넘어 음악, 패션, 거리 문화까지 흡수하며 젊은 세대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브랜드로 확장했다. 나이키를 신는 것은 단순히 운동화를 산다는 의미가 아니라, 특정한 라이프스타일을 선택하는 행위가 되었다. 브랜드는 ‘스포츠 장비 회사’에서 ‘문화 기업’으로 진화한 것이다.
오늘날 나이키는 세계에서 가장 큰 스포츠 브랜드이자, 글로벌 기업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스토리 중 하나로 기록된다. 출발은 일본 신발 수입상이었지만, 혁신과 마케팅, 문화적 감각을 더해 세계적 아이콘으로 성장했다. 필 나이트와 빌 보워만이 남긴 유산은 단순한 회사가 아니라, 세대와 세대를 이어온 문화적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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